세계 뉴스나 경제 기사를 보다 보면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위협한다는 후티 반군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며 전 세계 상선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강대국인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거침없이 대립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집단일까요.
| 후티 반군 |
단순한 테러 단체나 일시적인 반란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역사적 뿌리와 복잡한 중동 정세가 이들의 뒤에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예멘 북부 산악 지대에서 출발해 전 세계 물류의 목줄을 쥐흔드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한 후티 반군의 역사와 정체가 궁금해서 파헤쳐 봤습니다.
1,000년의 종교적 뿌리와 자이드파의 소외
먼저, 후티 반군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먼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예멘 북부 산악 지대에 자리 잡고 있던 자이드파라는 종교적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자이드파는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로, 과거 오랫동안 예멘 북부 지역을 지배하며 고유한 종교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1990년 남예멘과 북예멘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통일 예멘 공화국이 출범했으나, 이는 후티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통일 정부를 이끌게 된 수니파 중심의 예멘 중앙정부는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있는 남부와 수니파 지역 위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반면 예멘 북부의 자이드파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었고, 종교적으로도 근본주의 수니파의 세력 확장에 밀려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평화로운 종교 운동에서 무장 투쟁으로의 전환
이러한 정부의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자이드파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일어선 인물이 바로 후세인 바드르 알딘 알후티였습니다.
| 후세인 바르드 알딘 알후티 |
그는 1990년대 초반 예멘 북부의 사다 지역에서 '신앙하는 청년들'이라는 종교 및 문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이 단체는 처음에는 자이드파의 전통 강좌를 열고 청년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평화로운 종교 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이끌던 지도자 후세인의 이름에서 따온 '후티'라는 명칭이 점차 퍼져나갔고, 예멘 정부의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이들의 성격도 점차 급진적으로 변해갔습니다.
| 후티 |
결정적인 계기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었습니다. 당시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정권은 미국의 알카에다 소탕 작전에 협력하며 미국과 밀월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를 본 후티 지도부는 예멘 정부가 미국의 하수인이 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반미 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이때부터 후티 세력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섬뜩한 슬로건을 외치며 본격적으로 정권에 맞서는 반정부 무장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예멘 정부는 후티를 거칠게 탄압했고, 2004년 군사 작전 끝에 지도자 후세인을 체포해 피살했습니다. 하지만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은 후티 세력을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북부 부족들의 거센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후세인의 형제들이 새로운 지도자로 나서며 단체는 '알라의 지원자들'이라는 뜻의 '앙사룰라'라는 공식 명칭을 내걸고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예멘 정부와 후티 사이에는 여섯 차례나 끔찍한 내전이 반복되었고, 이 과정에서 후티는 단순한 반란군을 넘어 고도로 훈련된 정예 무장 세력으로 거듭났습니다.
예멘 수도 점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 개입
2011년 중동 전체를 휩쓴 '아랍의 봄' 시위는 후티에게 역사적인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랜 기간 예멘을 독재하던 살레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국가 행정과 군사 체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북부에 웅크리고 있던 후티는 거침없이 남진을 시작했습니다.
| 아랍의 봄 |
마침내 2014년 후티는 예멘의 수도 사나를 전격 점령했고, 2015년에는 새로 취임했던 대통령마저 해외로 축출해 버렸습니다.
| 예맨의 지정학적 위치 |
예멘 북부를 넘어서 국경 바로 아래까지 후티의 손에 들어오자, 바로 옆 나라이자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커다란 안보 위협을 느꼈습니다.
사우디는 예멘을 자신들의 안보상 뒷마당으로 여겨왔는데, 국경지대에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 무장 세력이 들어서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예멘 내전 |
결국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 연합군을 결성해 쫓겨난 예멘 합법 정부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예멘 내전에 전격 개입했습니다.
사우디는 압도적인 자금력과 최첨단 미국산 무기를 바탕으로 후티 지역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했습니다.
이란과의 결탁과 '저항의 축' 형성
그러나 승패는 사우디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산악 지형에 익숙하고 강인한 전투력을 지닌 후티 반군은 사우디의 공습을 온몸으로 버텨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후티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준 구원투수가 바로 이란이었습니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과 사우디를 견제하기 위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의 하마스 등을 묶어 '저항의 축'이라는 친이란 연대를 구축해 왔는데, 후티 역시 이 저항의 축의 핵심 멤버로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 후티 반군 |
이란은 후티에게 자금과 무기는 물론 탄도미사일과 자폭 드론 기술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후티는 사우디 본토의 공항과 정유 시설을 드론으로 역공격하는 수준까지 군사력을 끌어올렸고, 결국 사우디는 막대한 비용과 비판만을 안은 채 사실상 예멘 내전에서 발을 빼게 되었습니다.
예멘 정부의 연명과 후티의 해상 지배력
그렇다면 후티 반군에게 군사적으로 까마득히 밀린 예멘 합법 정부는 어떻게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을까요.
예멘 정부는 비록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여전히 예멘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남부 해안 도시인 아덴에 임시 수도를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강력한 외교적, 재정적 후원을 받아 겨우 정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후티의 이슬람 시아파 통치를 원치 않는 남부의 다양한 부족 세력과 반후티 무장 집단들이 정부 편에 서서 남부 지역을 방어하고 있기 때문에, 후티 역시 예멘 전역을 다 삼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홍해 봉쇄와 전 세계 물류를 흔드는 위협
최근 후티 반군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바로 홍해와 바브알만데브 해협에서 벌이는 상선 공격 때문입니다.
| 후티 반군 유조선 점령 |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이 쥐고 있는 중동 원유의 주요 수송로라면, 예멘 앞바다의 홍해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수에즈 운하의 핵심 입구입니다.
세계 해상 물동량의 10퍼센트 이상이 지나는 이 좁은 길목을 후티가 드론과 미사일로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티가 해상 수송로를 인질로 잡은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팔레스타인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스라엘 연관 선박이나 미국, 서방의 상선들을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이 이슬람 세계의 강력한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안팎에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세계 물류의 목줄을 죄어 유가와 물류비를 폭등시킴으로써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주고, 향후 국제 정세 협상에서 절대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결국 후티 반군은 단순히 국경 지대에서 얼쩡거리는 일시적인 반란군이 아닙니다. 이들은 역사적 차별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어 예멘 수도를 차지한 실질적인 지배 세력이자, 이란이라는 거대한 배후를 두고 세계 경제와 안보를 흔드는 중동 정세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의 뿌리와 역사를 돌아보면,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풀어야 할 정세와 물류 위기의 답이 얼마나 복잡하게 꼬여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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