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남부,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400킬로미터를 달리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조한 고원이 펼쳐진다. 연간 강수량이 20분도 채 안 될 만큼 바짝 마른 땅. 그런데 그 위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거미, 벌새, 원숭이, 고래, 그리고 수십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직선들. 이것이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다.
이 그림들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27년의 일이다. 페루의 고고학자 토리비오 메히아 헤스페가 지상을 걷다가 거의 우연에 가깝게 이 선들을 처음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땅 위에서 보면 그저 자갈이 치워진 얕은 홈처럼 보일 뿐이어서, 발로 밟고 서 있어도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939년, 미국 롱아일랜드대학의 역사학자 폴 코속이 관개수로를 연구하러 이 지역을 찾았다가 비행기 위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목격한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동물 형상, 셀 수 없이 많은 직선들. 하늘에서만 보이는 세계였다.
한 여성이 평생을 바친 사막
코속의 연구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던 독일 출신의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1903~1998). 처음에는 조수에 불과했던 그녀는 곧 나스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1946년, 그녀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집으로 아예 이사했다. 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홀로 지상화를 기록하고, 측량하고, 보존하기 위해 싸웠다. 사막을 걸어 다니며 모래를 쓸어내고 수식을 계산했으며, 직접 쓴 책의 수익금으로 보안 요원을 고용해 유적을 지켰다. 페루 정부가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도록 설득한 것도,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이끌어낸 것도 그녀였다.
라이헤는 나스카 지상화가 거대한 천문 역법이라고 믿었다. 일부 선들이 하지와 동지의 일출·일몰 방향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1967년 보스턴대학의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가 기원전 5000년부터 서기 2000년까지 7000년치 천체 운동을 시뮬레이션해 나스카의 선들에 대입한 결과, 우연을 유의미하게 넘어서는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천문역법 가설은 큰 타격을 입었고, 라이헤의 이론은 결국 주류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그녀가 없었다면 지상화는 개발과 방치 속에 훨씬 더 훼손되었을 것이다. 페루 사람들은 그녀를 '라인의 여인(Lady of the Lines)'이라 부르며 국가 최고 훈장인 태양훈장을 수여했다.
하늘에서 보는 그림? 아니면 땅 위를 걷는 의식?
그렇다면 나스카 사람들은 왜 이 그림들을 그렸을까. 오늘날 고고학계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가설은 물과 연관된 제례 의식이다. 나스카 사막은 연중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극한의 건조 지역이다. 이런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물은 신에게 빌어야 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벌새는 풍요로운 수확, 거미와 원숭이는 비를 상징하는 동물로 안데스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이 이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수많은 직선은 카와치(Cahuachi)라는 신전을 향하고 있는데, 카와치는 나스카강이 잠시 지하로 흐르면서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 성스러운 장소로 숭배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즉 그 직선들은 하늘에 띄워 보낸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 발로 걸으며 신에게 기원을 올리는 순례의 길이었을 수 있다. 사제와 순례자들이 선을 따라 이동하며 의식을 치르고, 커다란 사다리꼴과 삼각형 공간 안에서 제례를 올렸다는 것이다. 지상화 주변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굴껍데기 장식품이 제물로 바쳐진 흔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늘에서 봐야만 보이는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시 나스카 사람들에게는 걷고, 모이고, 빌던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AI가 다시 열어젖힌 수수께끼
2024년, 일본 야마가타대학 나스카연구소와 IBM이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인공지능으로 나스카 고원 전체를 10센티미터 단위의 격자로 분석해 303개의 새로운 지상화를 추가로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기존에 알려진 지상화의 수는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새로 발견된 그림들은 크기가 3~10미터로 기존의 대형 지상화보다 훨씬 작으며, 인간, 알파카, 라마, 잘린 머리 등 일상과 제의에 가까운 소재를 담고 있다. 이 작은 그림들은 고대 오솔길 근처, 평균 43미터 이내에 위치해 있어 개인이나 소집단이 실제로 보고 사용하던 것들로 추정된다. 반면 수백 미터짜리 대형 지상화는 광장 같은 의식 공간 주변에 몰려 있어 공적인 행사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
PNAS에 발표된 이 연구는 나스카 지상화를 단일한 목적의 산물로 보는 시각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서로 다른 이유로, 하지만 하나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다.
사실 이 부분이 나스카를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지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스카 지상화를 '외계인이 착륙했던 활주로'나 '하늘에서 신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신비롭고 초월적인 언어로 소비해왔다. 하지만 고고학이 조금씩 벗겨낸 실체는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비가 오지 않아 두려웠던 사람들. 신에게 물을 빌며 선 위를 걸었던 사람들. 작은 그림을 그려 길가에 남겨두고 순례길을 떠났던 사람들. 그 절박함과 정성이 2000년을 넘어 지금도 사막 위에 남아 있다.
나스카 지상화는 현재 기후변화의 위협 앞에 놓여 있기도 하다. 지상화의 깊이는 불과 10~30센티미터에 불과해, 폭우가 내리면 쉽게 지워질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지구에서 손꼽히게 건조한 환경이 이 그림들을 지켜왔는데, 기후가 바뀌면서 그 보호막도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그 옛날 나스카 사람들이 비를 빌며 새겼던 그림이, 이제는 그 비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아이러니다.
이 글은 공개된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세부 연대나 해석은 연구자와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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