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아브라함 협정과 사우디-이란 관계 복원: 2020년대 동맹 재편

지난 13편에서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혼란을 틈타 등장했던 극단주의 테러 집단 IS의 부상과 소멸,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안보적 과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수십 년간 중동을 규정짓던 키워드가 '전쟁', '테러', '외세의 침공'이었다면,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동 지형에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의 거대한 외교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영원한 숙적이던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정식 외교 관계를 맺고, 중동의 양대 맹주이자 이슬람 종파 갈등의 중심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마주 앉아 손을 잡은 것입니다. 오늘 14편에서는 2020년대 중동 세력 구도를 뿌리째 바꾸어 놓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과 ‘사우디-이란 관계 복원’의 배경, 그리고 이 거대한 동맹 재편이 지닌 의미를 심층 분석합니다.

1. 70년 금기의 깨짐: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의 탄생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아랍 국가들의 공식 입장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1979)와 요르단(1994)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국가에 이스라엘과의 교류는 수십 년간 철저한 금기였습니다.

그러나 2020년 9월, 미국의 중재 아래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어서 수단과 모로코까지 합류하며 아랍권의 대이스라엘 봉쇄망이 무너졌습니다.

아랍 국가들이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원칙을 깨고 이스라엘과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공통의 위협, 이란의 팽창: 사우디를 비롯한 펠리시아만 아랍국가(GCC)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이란의 핵 개발과 '저항의 축' 무장 세력 확장은 가장 치명적인 안보 위협이었습니다. "적이 같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입니다.

  • 경제 및 첨단 기술 협력: UAE와 실용주의 아랍국가들은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IT, 인공지능, 국방, 수자원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2. 사우디-이란의 기적적 악수: 중국의 중재와 복교

아브라함 협정이 '반(反)이란 연대'의 성격을 띠며 중동의 긴장을 높이는 듯했던 2023년 3월,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외교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2016년 사우디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 사건 이후 단교 상태에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 만에 전격적으로 관계 복원에 합의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협상을 중재한 주체가 전통의 중동 맹주인 미국이 아닌 중국(베이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당시 외교적 맥락을 되짚어보면, 이 합의는 양국의 극단적인 국익 계산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 사우디의 입장: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대규모 경제 개혁 프로젝트인 '비전 2030'과 네옴시티(NEOM) 건설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이 막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예멘 후티 반군의 드론 공격 등 이란과의 대립으로 인한 안보 불안을 잠재워야 했습니다.

  • 이란의 입장: 서방의 혹독한 경제 제재와 내부 반정부 시위로 고립되어 있던 이란은 아랍 맹주인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 복교는 중동 내 종파 대립을 완화하고, 중동 지역에서 미국 일극 체제가 저물고 다극화된 새로운 외교 지형이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었습니다.

3. 동맹 재편의 이면: 소외된 팔레스타인과 불안정한 평화

2020년대의 이러한 동맹 재편은 중동에 새로운 평화의 기운을 가져오는 듯 보였으나, 동시에 치명적인 파괴적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외면’이었습니다.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과 빠르게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협력을 논의하는 동안,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는 완벽히 잊혀져 갔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랍 형제국들마저 자신들을 버리고 이스라엘과 밀월관계를 맺고 있다"는 거대한 박탈감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바로 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소외와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타결 직전의 긴장감이 맞물려, 훗날 2023년 10월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의 전격적 기습 공격과 대규모 무력 충돌이 다시 터져 나오게 만드는 직접적인 외교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4. 우리가 짚어봐야 할 역사의 변화와 교훈

2020년대 중동의 동맹 재편을 관찰할 때 우리는 과거 냉전식 구도나 단순한 종교적 대립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첫째, 이념에서 '실리'로의 전환입니다. 오늘날 중동 국가들은 과거처럼 '아랍 민족주의'나 '이슬람 종파'라는 명분에만 얽매이지 않습니다. 자국의 경제 발전, 첨단 기술 확보, 내부 정권의 안정이라는 철저한 실리적 국익을 바탕으로 어제의 적과도 손을 잡는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외교 주체의 다변화입니다. 중동은 더 이상 미국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지역이 아닙니다. 사우디와 UAE 등 주요 산유국들은 미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자국의 몸값을 높이며 자율적이고 다각화된 믹스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 3줄 핵심 요약

  •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UAE, 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사상 첫 정식 수교를 맺으며 반(反)이란 실리 연대를 구축했습니다.

  • 2023년 사우디와 이란은 중국의 중재로 7년 만에 관계를 복원하며, 종파 대립 완화와 중동 내 외교 다극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 이러한 강대국 및 아랍권의 실리 외교 뒤편에서 팔레스타인 문제가 소외되었고, 이는 지역 내 새로운 유혈 충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다음 마지막 15편에서는 본 시리즈의 최종장인 ‘2026년 현대 중동의 과제: 평화 구축의 조건과 공존을 위한 조건’을 다룹니다. 100여 년의 갈등사를 뒤로하고 오늘날 중동이 직면한 핵심 과제와 지속 가능한 공존의 길을 총정리합니다.

댓글 쓰기

0 댓글